아브라함이 왜 하란에서 지체했는가?
창세기 11장 27절~12장 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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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중앙신문 기자 작성일22-01-20 13:57본문
김종윤 교수의 집중분석

그럼 왜 아브라함은 하란에서 지체했는가? 그리고 이것이 주는 신학적인 의미는 무엇인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란은 우르에서 북서쪽으로 960Km에 위치한 교통의 요지로서 번성하던 상업도시였다. 그렇다면 왜 아브라함의 가족이 하란에 머물렀을까? 성경은 분명한 답을 주지 않고 있다. 다면 여러 가지 정황을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우선 종교적 원인으로 아브라함 가족이 하란에 머물렀다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유추는 데라가 달신(月神)인 난나를 섬겼다는 가정에 근거한다. 즉 하란에는 데라의 친척이 있고 갈대아 우르에서처럼 달신 숭배가 행해졌으므로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여기서 여행을 중단하자고 아들을 설득했을 것이다. 이것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여호수아 24장 2절은 데라가 다른 신들을 섬겼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유추는 아브라함은 야웨를 섬겼는데 그의 아버지가 달신인 난나를 섬기고 있었고 또 다른 신을 섬기고 있는 아브라함의 말을 듣고 데라가 갈대아 우르를 떠났을 있었을까하는 의문을 가지게 한다.
둘째로는, 늙은 데라의 건강적 원인을 들 수 있다.
아브라함은 늙은 아버지 데라에게 보다 익숙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서 원래 노선에서 60마일이나 벗어난 곳에 있는 하란에 머물다가 데라가 하란에서 죽은 후 다시 소명을 따라 가나안 땅으로 움직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가정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데라가 205살에 죽었고(창 11:32) 아브라함이 이때 75세이었으므로(창 12:14) 아브라함이 태어났을 때 데라는 이미 130세였다. 또한 갈대아 우르에서 이미 아브라함이 결혼했으므로 갈대아 우르에서 나올 때 데라는 거의 200세가 되었다는 가정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200세가 넘는 고령의 데라에게 하란과 가나안 사이의 사막길을 이동하는 것은 무리였다고 판단하고 잠시 가나안 땅으로 가는 것을 주저했을 수도 있다.
셋째, 정서와 심리적 원인을 들 수 있다.
인간의 기본적인 정서에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욕구가 있다. 고고학자들은 하란이 데라의 고향이었다고 주장한다. 그 증거로 데라의 조상들의 이름들 중 상당수가 하란이 위치한 아람지역의 지명들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아들의 이름을 하란이라고 지은 것도 이것을 뒷받침한다. 따라서 데라가 그동안 살아왔던 갈대아 우르를 떠나면서 자신의 고향인 하란에 들리고자 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개연성 있는 설명으로 하나님의 섭리적 원인을 들 수 있다.
‘하란’이라는 지명은 ‘지체하는 곳’이라는 뜻이고 ‘데라’의 이름의 뜻은 희한하게도 ‘연기하다’라는 뜻이다. 지명이나 인명의 큰 의미를 부여하는 구약성경의 표현의 특징을 감안한다면 아브라함이 소명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는 데 있어서 아버지 데라가 인간적으로 지연시켰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데라는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여정에서 중도에 그만둔 자로 이해될 수 있다. 여기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아버지 데라의 수하에서 완전히 독립하여 하나님의 부름에 책임이 있는 반응을 점진적으로 요구했을 것이다.
결국 데라는 하란에서 죽는다. 한편 창세기 11장 27절 이후에 나온 데라의 족보는 갈대아 우르에서 살던 데라의 가족이 일찍 죽은 하란을 제외하고 모두 7 명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이들 가운데 데라와 함께 가나안 땅으로 출발한 사람은 데라, 아브라함, 사라, 롯 등 총 네 명이었다. 즉 갈대아 우르에 살던 데라의 가족 중 나홀, 밀가, 이스가는 아예 갈대아 우르를 떠나지도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반면 데라는 가나안까지 가는 여정의 중간지점인 하란까지만 갔고 그곳에서 죽었다.
즉 그는 목적지까지 가지 않고 중간에서 여정을 포기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중도에 포기한 사람으로서 이 후에 더 이상 데라에 대한 언급은 성경 어느 곳에서도 없다.
나중에 롯 역시 눈에 좋아 보이는 소돔과 고모라를 선택함으로써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이르지 못하게 된다. 이후의 성경은 아브라함에 의해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 극적으로 탈출한 이야기를 제외하고는 그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데라와 롯의 인생에 대한 성경의 묘사는 하나님의 소명을 받고 살아가는 신앙인들에게 주지하는 바가 크다. 이 둘은 모두 시작은 했지만 결국 중간에 포기한 사람들이다. 성경은 중간에 포기한 이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물론 데라나 롯이 억울할 수 있다. 자신들은 아예 갈대아 우르를 떠나지고 않은 다른 세 명의 가족들보다는 낫지 않겠냐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구약성경의 평가는 단호하다. 처음부터 출발하지 않은 자나, 중간에 그만 둔 자나 하나님이 이끄신 역사 속에서 무의미한 존재라는 것은 동일하다. 우리 역시, 신앙적 결단으로 시작한 하나님과 함께하는 여정을 끝가지 인내하며 이어 나가야 할 것이다.
김종윤 교수
온석대학원대학교 신학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