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의 복 2 - '복있는 사람의 참된 의미'
값진 보회- 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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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중앙신문 기자 작성일22-02-03 04:09본문

신구약 성경 66권은 성삼위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믿음으로 받아 성경에 약속된 하나님의 복을 상급으로 받아 누리는 것이 핵심인 것을 말씀하고 있다. 아담과 노아, 그리고 그 후손들에게는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여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복을 명하셨다.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게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 영원토록 번성하고 충만할 것이라는 약속과 함께 모든 복의 근원이 되리라고 하셨다. 또한 모세와 그 후손들에게는 하나님께 나아가 속죄와 화목을 누릴 수 있는 예배와 규범을 허락하셨으며, 다윗과 그 후손들에게는 이스라엘의 영원한 왕권을 약속하셨다.
시편의 기자는 자신이 하나님의 복을 소유한 사람이며, 그의 삶이 그것을 증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원어가 어쨌든 간에 우리 성경은 복 있는 사람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이 번역은 우리의 문화와 정서에 근거하여 우리에게 그 의미를 전달하려는 것이다. 복 있는 사람은 이미 복을 받아 누린 사람이라는 뜻이지 결코 아직 받지 못한 복을 누리게 될 사람은 아닐 것이다. 시편은 대체적으로 삶의 간증이며 그 간증을 바탕으로 한 교훈적 권면이다. 따라서 복 있는 사람은 그 복을 받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 된다.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는 것이 복이다. 악인은 다양한 모든 형태의 범죄를 저지르는 자를 지칭한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악인을 저희 마음대로 내어버려 두셨다고 했다. 악인은 그 마음에 하나님의 법을 두기 싫어하며, 그 법에 합당치 못한 일을 행하고, 또한 그런 행위들을 옳다고 하는 자들이다. 그런 자들의 꾀는 악한 모략, 악한 가르침, 악한 지혜이며 그 모임에 동참하는 것은 인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가늠조차 하기 힘든 크나 큰 이득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악인의 꾀는 하나님의 의도에 어긋나며,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일이며, 종말에 책망과 징계를 받을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많은 사람들 앞에 떳떳하지 못한 일이다. 종교개혁자 칼빈은 소극적으로 말씀을 지키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말씀을 지키라고 했다. 내게 선을 베푸는 자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도 그리 한다고 지적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하는 것도 복 있는 사람의 행동이지만 악인의 잘 됨을 부러워하지 않고 그런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는 것 또한 복 있는 사람의 행동일 것이다.
죄인의 길에 서지 않는 것 또한 복이다. 죄인은 하나님의 말씀과 세상의 규범을 구체적으로 범하는 자를 말한다. 죄인의 길은 죄인의 규범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치 않는 것을 지칭한다. 악인의 꾀에 빠지거나 혹은 악인의 꾀를 따르면 죄인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혹은 부지불식간이든 죄인의 길을 걷는다면 그렇지 아니 하는 다른 모든 이들에게 피해를 끼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피해를 입은 불특정 다수의 부르짖음을 외면치 않고 반드시 그 값을 죄인, 악인에게서 받아 내신다. 악의적으로 죄인의 길을 걷는 사람은 피해자들의 고통과 하나님의 보응을 두려워하며 살아야 하니 복 있는 사람의 모습은 결코 아닐 것이다.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것 역시 복이다. 오만한 자는 교만한 자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치 않고 사람의 힘과 지혜를 따를 때 교만하다고 질책하셨다. 오만한 자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며, 온 우주의 영광을 자기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만한 자의 자리에는 하나님의 감추어진 계획이 아닌 사람의 드러난 계획이라는 특권이 함께 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그 특권을 바라고 하나님이 아닌 하나님께서 부리는 종들에게 아부하는 것이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는 것이다. 오만한 자의 자리에서 얻은 불의한 특권은 많은 세상 사람들이 갈망하는 복된 모습에 손쉽게 다가갈 수 있다. 그러나 그 특권은 영원하지 않으며, 그 복은 일시적이어서, 더 악고 오만한 다른 이에게 넘어가기 마련이며, 동시에 그 모든 비난과 수모를 감당해야 한다. 차라리 그런 자리에는 앉지도 말고, 생각지도 말고, 멀찍이 떨어져 있는 것이 복일 것이다.
온석대학원대학교 신학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