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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과 포용이 필요한 시대
권평 교수의 역사와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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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중앙신문 기자 작성일22-02-03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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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평 교수의 역사와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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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 새해가 시작되었지만 코로나와 대선을 앞둔 우리나라 정치로 인해 희망차야할 새해부터 암울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지리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는 매우 적은 국토면적을 가진 나라이다. 미국의 한 주(州)보다 면적이 작고 중국의 한 성(省)보다 인구가 적다. 그러면 이 작은 나라에서 모든 국민들이 하나가 되어 으싸으싸 해야 할 판인데 오히려 끼리끼리 나뉘어 싸우는 것을 즐기는 것 같다. 조선시대만 해도 서인(西人)과 동인(東人)으로 나뉘어 싸우다 이후 4색 당쟁의 붕당(朋黨)정치로 왜란(倭亂)과 호란(胡亂)을 호되게 겪었고 해방 이후에도 편을 갈라 싸우다 참혹한 6.25를 겪었다. 오늘날도 정신 차리고 국정을 견제해야할 야당은 연일 편을 갈라 서로를 비난하는 부끄러운 모습을 연출하고, 여당은 ‘우리 편’이라면 그가 무슨 범죄를 저질렀든지 합리화하거나 감추거나 미화하기에 바쁜 모습만 보인다. 보편적 정의나 부끄러움이란 도덕관념을 찾아보기 힘든, 오직 권력에 대한 노골적인 욕심만을 추구하는 시대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이념이나 사상 종교 인종 학연 지연 혈연 등으로 나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여기서 ‘자기들’만의 기득권을 주장하기 시작하면 그 사회나 국가는 이미 발전의 희망을 잃고 망조(亡兆)에 든다는 것을 역사는 잘 보여준다.

그런데 오늘의 사회와 반대되는 모습을 보여준 선교사들이 있다. 언더우드 2세, 우리나라 이름으론 원한경(H. H. Underwood), 우리나라 최초의 목사선교사로 잘 알려진 언더우드 선교사(H. G. Underwood)의 아들과 언더우드의 뒤를 이어 연희전문 2대 교장을 지낸 에비슨(O. R. Avison)이 그들이다. 언더우드 1세는 다 알다시피 매우 훌륭한 선교사였다. 그는 적극적인 복음 전도와 선교를 통해 교회를 세우고 학교를 세우고 과수원을 만드는 등 우리나라에 신앙과 복음과 새로운 서양의 지식을 전달하는데 힘썼을 뿐만 아니라 일자리까지 만들어 준 인물이다. 언더우드는 최초로 고아원을 세웠으며 연희전문대학(현재의 연세대학교)를 설립하여 우리나라의 근대화에도 엄청난 공헌을 하였다. 이런 언더우드 1세는 일반에 매우 잘 알려져 있지만 그의 아들 원한경이나 에비슨 선교사는 그들이 끼친 공헌에 비해 덜 알려져 있다. 

원한경은 언더우드와 어머니 릴리어스 호튼 의료선교사 사이에 태어난 외아들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우리나라에서 교육으로 많은 공헌을 한 인물이다. 원한경이 이룩한 독특한 공헌은 여럿 꼽을 수 있지만 오늘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드넓은 포용력이다. 원한경은 아버지 언더우드 1세 그리고 에비슨의 뒤를 이어 연희전문학교의 3대 교장으로 봉직했는데 그는 아버지의 절친이었던 에비슨 2대 교장을 도와 학교를 위해 헌신하였다. 사실 에비슨은 당시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의 교장을 겸직하고 있었기에 원한경이 교수로써 이미 연희전문의 많은 부분을 담당해야만 했다. 

에비슨과 원한경의 공헌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지극히 파격적인 그리고 포용적인 탕평(蕩平) 인사였다. 즉 조선시대를 갓 벗어나 사농공상, 양반 상놈의 신분사회의 잔재가 강하게 남아있던 일제강점시대에 신분과 이념과 정형화된 학문의 개념을 초월하여 뛰어난 인물을 연희전문의 교수로 채용하는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했기 때문이다. 

학문적인 면에서 보면 백낙준과 정인보를 들 수 있다. 백낙준은 우리나라 최초로 미국 예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인물이고, 이에 반해 정인보는 고작 ‘서당(書堂)’이 최종학력이었던 인물이다. 미국 예일대학 박사와 서당 출신. 두 사람의 당시 학력은 지금 생각해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차이가 났지만 두 사람 다 동등하게 연희전문의 교수로 봉직하였다. 

이들은 신분적인 면에서도 매우 두드러진 인사를 했다. 왕의 동서(同壻)와 백정의 아들의 평등. 유억겸과 박서양이 두 주인공인데 유억겸은 유길준의 아들로 조선왕조 마지막 왕인 순종황제와 동서지간이다. 즉 그의 부인이 순종황제의 황후인 순정효황후의 동생이었다. 유억겸은 도쿄 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는데 당시 동경의 제국대학에 들어간 한국인은 모두 손에 꼽을 정도였다. 반면 이 시대 가장 하찮은 신분이 백정이었는데 백정은 이름이나 성이 없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천대를 받으며 살아야 했다. 그런데 박서양은 이런 백정의 아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모교 최초의 한국인 교수가 되었다. 

이념적인 면에서도 에비슨과 원한경은 포용적이었다. 연희전문이 기독교 학교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자로 마르크스주의 사관의 경제를 가르쳤던 백남운을 교수로 임용하였다. 백남운은 1925년부터 1938년까지 연희전문학교의 교수로 재직하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경제사라 할 수 있는 『조선사회경제사(朝鮮社會經濟史)』(1933)와 『조선봉건사회경제사(朝鮮封建社會經濟史)』(1937)를 출간하여 우리나라 경제사학 발전에 선구적 역할을 하였고 후에 월북하였다.  

‘내 편’ ‘네 편’으로 나뉘어 작은 일에 서로를 헐뜯고 비방하는 모습은 우리 근대사에서 너무나 많이 봐왔다. 예수님은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라고 말씀하시며 편 가르기가 아닌 포용과 관용의 정신을 보여주셨다. 편 가르기가 지겹도록 되풀이 되는 이 시대에 진정한 정직, 포용 그리고 관용을 보고 싶다.

권 평 교수

연세대학교 및 장로회신학대학원을 마치고

연세대학교 일반대학원에서 신학석사(Th.M.)와 박사학위(Ph.D.)를 취득하였다.

현재 온석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교회사를 가르치고 있으며

사단법인 한국교회사학연구원의 원장으로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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