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금자 목사의 "하나님과 사람들"
광야생활의 세례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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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중앙신문 기자 작성일22-02-04 17:01본문
광야생활의 세례 요한

소망교회 담임
예장중앙총회 서울본부지역 부총회장
예나 지금이나 척박하기 그지없는 유대 지방에서의 광야생활은 어떠했을까?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부터는 세례 요한이 수행했던 광야생활을 다각적으로 살펴보자. 그럼으로써 세례 요한이 수행했던 광야생활을 더욱 생생하게 느끼고,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어떤 일들이 있을 수 있는지 더욱 분명히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당시에 광야생활은 말 그대로 광야에서 생활하는 것이다. 기거할 수 있는 집이 없다. 집은 온갖 편의시설이 갖추어져 있어서 우리가 쉴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지만, 우리를 보호해주는 안락처이기도 하다. 광야생활에서는 자신을 보호하고 쉴 수 있는 집이 없기 때문에 여러 가지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광야는 물이 부족하여 극히 건조하다. 그리고 살인적인 더위가 있다. 특별히 낮 시간대에 작열하는 태양빛은 극히 위험하다. 시편 121:6에는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낮 시간대의 뜨거운 태양빛은 사람을 상하게 할 정도로 위험한 것을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중동 지방에서는 기온이 매우 높은데도 불구하고 태양빛을 피하기 위해서 온몸을 천으로 감싸고 다닌다.
광야에는 늘 동물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광야생활을 하다가 도마뱀을 만나는 것은 양호한 것이다. 무시무시한 뱀이라도 만나면 줄행랑을 쳐야 한다. 뱀을 만날 때 그래도 그것이 낮이면 뱀을 멀리서 보자마자 미리 도망치면 되지만, 밤에 잠을 자다가 만나기라도 하면 낭패다. 광야에는 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전갈도 있다. 전갈은 조그마한 체구인데도 위력이 대단하다. 뱀에게도 지지 않는데다가, 전갈의 꼬리에 있는 독은 치명적이다. 광야에는 이러한 파충류 외에 다른 동물의 위험도 있다. 삼손이 광야에서 사자와 싸웠던 사건을 생각하면 여러 동물의 위험이 존재한다고 하겠다. 그중에서 늑대의 위험은 만만치가 않다. 늑대 한 마리를 만난다면 어떻게든 도망쳐 보겠으나 늑대는 항상 무리를 지어 다니면서 협동으로 사냥을 한다고 한다. 따라서 광야생활을 하다가 늑대 무리를 만나면 극히 위험해진다. 이외에도 광야에는 수없이 많은 동물들이 있고 그들로부터의 위험을 잘 피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성경에 보면 광야생활을 한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잠을 잘 때 동굴로 피해서 잠을 자곤 했다.
세례 요한이 광야생활을 하면서 먹은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다(막 1:6). 석청은 들꿀을 가리킨다. 말랑한 젤리와 비슷한데, 일전에 성지순례를 다녀온 분에게서 선물 받아서 먹어보니 그런대로 맛이 있었다. 마가복음 1:6에서 세례 요한이 먹은 음식을 왜 메뚜기와 석청이라는 특정한 품목 두 가지만 기술했을까? 다른 음식도 먹었는지 확실치 않지만 오직 이 두 가지만 기술한 것으로 보아서 세례 요한은 이 두 가지만 먹었을 가능성이 있다. 필자가 세례 요한처럼 광야생활을 한다면 석청은 그런대로 먹었겠지만 메뚜기는 도저히 못 먹었을 것이다. 굳이 먹는다고 하더라도 먹는 양 때문에 하루 종일 메뚜기만 잡으러 다녀야 했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실제적인 광야생활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광야생활을 오랫동안 수행했던 세례 요한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아마도 수염도 깎지 못하고 머리도 제대로 감지 못했을 것이다. 피부는 작열하는 태양빛에 검게 그을렸을 것이다. 그토록 고된 광야생활을 수행하는 세례 요한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면서 지냈을까?
마가복음 1:7~8의 세례 요한의 언급을 보면 우리는 그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서 광야생활을 수행했는지 명확히 알 수 있다.
“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이 말 한마디는 세례 요한이 어떤 정신으로 광야생활을 수행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그는 그토록 고된 광야생활을 하면서도 내 뒤에 오시는 분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철저하게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만을 생각하며 철저하게 겸손한 마음으로 광야생활을 수행했던 것이다.
그토록 힘든 광야생활을 수행했던 세례 요한은 본래 어떤 사람이었는가?
누가복음 1장에 따르면 그는 제사장 사가랴의 아들이었다. 당시의 제사장은 기득권층에 속했다. 세례 요한은 당시 유대사회의 엘리트 집안에서 태어나서 고급 교육을 받았고 경제적으로 어려움 없이 살던 사람이었다.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출세가도를 향해 달려 나갈 수 있었던 앞날이 촉망된 젊은이였다. 그러던 그가 그분이 오실 길을 준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자 이 명령에 순종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광야로 나갔다. 세례 요한은 하나님께 충성하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광야로 나갔던 것이다.
세례 요한의 광야생활은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유념해야 하는 교훈들을 깨닫게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여러 가지 어려움을 만나기도 한다. 작열하는 태양 같은 사람을 만나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고통을 받기도 한다. 뱀, 전갈과 같이 넘어서기 어려운 난관을 만나기도 한다. 이단과 같이 무리를 지어 다니며 사냥을 하는 대적자들을 만날 수도 있다. 광야에 물이 부족한 것처럼 갈증으로 목이 타들어가는 것과 같은 고통이 있을 수도 있다. 이럴 때 세례 요한의 자세를 기억해야 한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 한다”는 그의 철저한 겸손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30)는 그의 말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 철저하게 충성하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광야로 나갔던 그의 자세를 기억해야 한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 충성과 철저한 겸손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하나님께 철저하게 충성하지 않는 자세는 있을 수 없다. 또한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철저하게 겸손하지 못하다면 그것은 문제가 있다. 하나님께 충성과 철저한 겸손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반드시 필요한 덕목인데, 그럼과 동시에 이 두 가지 덕목은 과연 하나님의 일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판가름할 수 있는 기준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이 두 가지를 기준으로 늘 점검해보아야 한다.
예수님은 여자가 낳은 사람 가운데서 세례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었다고 크게 칭찬하셨다(마 11:11). 우리도 하나님께 충성하는 마음, 그리고 철저하게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여 예수님의 칭찬 듣게 되기를 소망한다.
